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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소선녀의 푸나무들의 노래

기사승인 2019.01.27  22:4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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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곶감

 

사진: 나 인 권

한 해가 또 이렇게 갔네요.

  연말에는, 처마에 매달려있는 곶감을 빼서 손님을 대접했어요. 서너 달, 바람과 햇빛에 치어서 검어지고 꼬들꼬들해진, 단맛이 베어 나오며 거죽에 흰 분이 돋기 시작한 감을, 참 맛있게 드시데요.

  처음으로 만들어 본거에요. 집집마다 감나무가 있는 시골에 살고 있어, 가을이면 감이 푸지지요. 우리 집 뜰에도 한 그루 있고요. 잘 익은 단단한 생감을 가려서 껍질을 벗긴 후, 바람이 잘 통하고 햇볕이 드는 처마에 달아두었어요.
 
  지나칠 때마다 만져서 모양을 잡아줬지요. 어찌나 감촉이 좋던지 덩달아 제 속도 말랑말랑해지지 뭐예요. 단단한 껍질을 벗겨 연해진 속을, 당신에게도 보여주고 싶어요.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순진한 모습에 끌리잖아요. 거침없이 자신을 드러낼 때가 가장 매력적이어요. 모든 아기가 사랑스러운 것도, 바로 가식이 없기 때문이지 않나요.

  지난해에 가장 아쉬웠던 것은, 단풍 든 내장산을 놓쳐버린 거여요. 해마다, 절정엔 너무 붐비기 마련이어서 새벽에 가곤했는데요. 이미 막바지도 한참 지나, 단풍이 다 지고 없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도, 허기가 가라앉지 않더라고요. 다만 한두 그루라도 남아있지 않을까하여, 영 놓치기 전에 가보리라 했지요.

  알람을 맞춰 새벽에 일어났는데, 바람이 요란하게 불고 빗방울이 떨어지데요. 어쩐다, 몇 번이나 그만 둘까 했지만 마음이 앞서데요. 도착했을 때는 다행히 비가 그쳤고요. 그런데 단풍은 하나도 없고 옛 추억만 남아있었어요. 이 잔디밭에서 공을 차고 놀았던 둘째아들은 이제 청년이 되었고, 하늘에 떠있는 저 능선을 탔던 젊음도 흘러갔는데, 일주문 곁의 모과나무는 그대로에요.

  이리저리 다니면서 행여, 단풍잎을 만날까 두리번거렸지만, 겨우 가지에 붙어있는 알량한 잎들도 바스러져있었어요. 언뜻 붉은 빛이 어리어 다가가보니, 고목에 달린 감이네요. 탱자만한 산감 요. 나무위에서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다가, 기꺼이 산새들의 먹이가 되어주겠지요. 탱탱하던 모습이 사라지고, 벌써 쪼그라져 있었어요.

  나무는 저 나름의 열매나 자기에게 맞는 계절을 가지고 있어 맘껏 싱싱하다가도, 제철이 지나면 시드는 법이지요. 하지만 산의 온갖 나무들 가운데, 유독 자유의 나무라 불리는 삼나무는, 여전히 푸른빛을 내고 있었어요.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언제나 한결같지요. 자유로운 사람도 이런 천성을 가지고 있는 게지요. 그러니 덧없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않는 것이고요.

  그렇게 청량하고 고요한 산에 살고 싶었어요. 서늘한 산의 정기가 가슴을 정갈하게 하더군요.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으로 내려가고 싶지 않았어요. 감나무처럼, 가진 것이 있거든 아낌없이 주고, 가진 것이 없으면 삼나무처럼, 자유인이 되고 싶었어요. 그래도 내려가야죠. 숨을 크게 한번 들이쉬었습니다.

  생명을 덤으로 받은 것임을 다시 한 번 되새겨요. 정말 살아있었다고 돌이켜 생각되는 때는, 마음을 보여준 순간이었어요. 곶감처럼 요.

김제시민의신문 webmaster@gjtimes.co.kr

<저작권자 © 김제시민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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