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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서예문화전시관 신축 반대한다

기사승인 2019.03.15  19:5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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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근 편집국장

  기자는 요즘 시 행정을 보며 거의 대부분 추진해서는 안된다는 반대입장을 너무 많이 밝혀왔기 때문에 매사에 딴지만 거는 불평불만주의자로 낙인찍힐까 흔근히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기자는 불평불만으로 가득찬 비관주의자는 아니라고 항변하면서 말문을 열까한다.

  기자는 그간 수차례에 걸쳐 김제시가 추진하는 각종 선심성 또는 소모성사업의 중단을 요구해왔다. 46억이 소요되며 특혜성 시비가 계속되고 있는 서울장학숙, 30억원이 투입될 장애인평생교육센터, 시비 28억이 투입되는 하키 전용구장, 시비 27억이 들어가는 지평선산단 관리사, 보건소와 동떨어진 곳에 신축하는 치매안심센터, 41억원을 넘게 투입하는 농업인교육문화지원센터, 특정인을 위한 벽골제창작스튜디오, 농악인들은 제각각임에도 추진되는 농악전통체험관, 앞으로 몇 곳에 설치할지 모르는 농기계 임대사업 분소 등 박준배 시장 취임 이후 더욱 탄력을 받고 있는 사업들이다.

  날로 인구와 세수입이 줄어드는 우리시의 현실을 감안하면 기존시설들의 운영비만으로도 곱사짐인데, 앞에 열거한 시설의 신축 사업비 뿐 아니라 영원히 남아서 소요될 유지·보수비와 운영비를 생각하니 지레 겁이 난다.

  그러나 시의 부질없는 삽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시는 '김제서예문화전시관' 신축을 위해 "문화유산의 체계적 보존·관리로 시민의 자존감을 높이고 새로운 서예문화 부흥의 계기 마련을 위해 전시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초 시는 김제향교 인근 시 소유 부지(교동 12-3외 8필)에 전시관을 신축할 계획이었으나, 관아와 향교 일원 문화재 경관을 보호하자는 의견에 따라 위치를 옥산동 474-5외 3필(997㎡)을 8억원에 사들여 건물을 신축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 부지 또한 도로와 접하는 면적이 적어 이 곳에 건물을 신축할 경우 건물은 길에서 뒤로 숨게 된다. 향교 앞쪽에 넓은 공터가 있음에도 굳이 이곳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누구의 땅을 비싼값에 사주기 위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시는 이 부지에 50억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2층(연면적 1500㎡)의 건물을 지으려고 한다. 지하 1층은 강의실과 체험관, 지상 1층은 상설전시관·수장고·사무실을, 지상 2층은 서예기획전시관·전북서예역사관서·수장고로 쓰겠단다.

  전시관이 지어지면 또 시비를 들여 내부 집기를 사들여야하고 시설관리를 위한 청원경찰과 사무관리원, 학예사 등을 배치해야 한다.

  당초 석정 이정직기념관을 계획했던 시는 서예가 강암 송성용선생을 기념하려던 서예문화전시관과 단일사업으로 이를 추진하고 있다. 결국 이정직선생과 송성용선생을 기리는 기념관이 되는 것이다.

  각종 문헌에 따르면 석정 이정직선생은 1841년 백산면 상정리에서 태어나 각종 학문을 두루 익히며 실학사상에 눈을 떴다. 27세 때 관직없는 야인으로 중국에 가는 사신을 수행한 계기로 중국 연경에 머무는 1년여 동안 중국 시문학에 대한 고증과 평론, 정주학과 양명학, 칸트와 베이컨 등 서양 철학에 대한 연구를 통해 동서양의 학문 성취에 많은 성과를 거뒀다. 매천 황현, 해학 이기와 함께 호남 삼걸로 일컬어지고 있다.

  강암 송성용선생도 1913년 백산면 상정리에서 태어나 한학과 서예를 익혔고, 청년기에 영암 월출산과 부안 개암사에서 휴양하며 학문을 넓혔다. 부친의 뜻에 따라 단발령에 불복하고 평생 상투와 한복을 고집하며 올곧은 선비의 지조를 지켰다. 1965년에는 전주로 이사해 후학을 지도했고, 30년 넘게 살았던 전주에 사재를 털어 강암서예관을 세우고 평생 수집해 온 서화 작품과 관련 서적 등 1600여점을 전주시에 기부했다.

  이정직선생과 송성용선생의 정신과 작품세계 및 업적은 두고 기릴만하겠지만, 해학 이기선생도 이정직선생 못지 않은 인물이고, 송성용선생은 고향을 떠나 전주에서 여생을 보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비판도 있는게 현실이다.

  석정 이정직기념관 건립을 위해 석정의 자손들이 시를 엄청 방문했었고, 송성용선생의 아들인 송하진 도지사 체제에서 도청 국장으로 근무했던 박준배시장이 취임한 이후 서예문화전시관 신축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사실 알고보면 우리고장의 인물은 한둘이 아니다. 그들의 위대함을 견주어 비교한다는 것도 죄스런 일이지만, 최근의 상황을 보면 역사적 인물의 위대함보다 그들의 자손이 얼마나 힘을 쓸 수 있는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인물이 부각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씁쓸함도 있다.

  서예문화전시관 신축에 엄청난 혈세가 투입되고, 이후 영원히 남아서 매년 3억원 가량의 운영비를 소진해야한다. 미술관도 방문하는 이가 적은데 수묵화와 서예는 더욱 적을 수 밖에 없다. 멈추는게 상식이고 김제를 위하는 길이다.

  역사적 가치와 문화를 경제적 논리만으로 반대하는 무식쟁이라고 기자를 비판한다해도 기자는 우리시의 여건을 감안해 '김제서예문화전시관' 신축을 반대한다.

  이번 추경예산을 보면 우리시 자체수입으로 사업은 커녕 공무원 월급도 3분의 2 밖에 충당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국·도비 보조금이 아니면 아무 것도 못한다.

  지금은 정신 바짝 차려야할 시기이지, 풍류 즐기며 째내고 살 처지가 못 된다. 허리띠를 졸라매도 살기 어려운 판에 각종 선심성이나 전시성 사업들이 무엇이란 말인가?

  정치인들이 쓰는 돈은 우리돈이지 그들 돈이 아니다. 그들이 선심 쓸 때 칭찬하지 말고 회초리를 들자. 정치인들 실컷 선심 쓰고 우리시 살림 말아먹고 떠나버리면, 고향 지키던 굽은 소나무들은 닭 쫓던 개가 될 수 있다.

  째내다 얼어죽고 째내다 망한다.

홍성근 기자 hong@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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