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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소선녀의 푸나무들의 노래

기사승인 2019.06.02  18: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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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 진달래꽃

사진 : 나인권

72. 진달래꽃

  '나이에겐 못 베기지'
  운전하고 가다가 아는 분을 만나서 차에 태우게 되었다. 연로하시지만 정정한 모습에 '건강 괜찮으시지요?' 여쭈었더니, 혼잣말인 듯하시는 말씀이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아는 나이가 되었다. 노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이 세상을 떠날 때가 가까워질수록, 육신은 쇠약해지기 마련이다. 친정엄마와 똑같다는 말을 많이 듣는 지점까지 왔다. 순식간에 지나온 참으로 허망한 인생이다.

  그나마 오는 도중에 만나는 사람과 자연이 위안이 되어 예까지 왔으니, 함께해 준 주변이 고마울 뿐이다. 거기다, 태어날 때부터 쭉 시골에 살아온 것이 큰 복이지 싶다. 늘 자연이 보내오는 다정한 눈길을 느낀다. 그래서 '푸나무들의 노래'를 쓸 수 있는 것이리라.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계속되겠지.

  사람은 근심거리가 있으면 자연과의 교감이 어렵다.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신발을 꿰차고 밖으로 나간다. 걷다보면 새순이, 들꽃이 아는 척을 한다. 안개가 걷히듯 시나브로 속이 가라앉는다. 가끔 길에서 당신을 만날지도 모르겠다. 물병을 빌려주거나 목례를 건넬지도.

  틈날 때마다 모악산에 가곤 하는데, 거기서 예기치 않게 진달래꽃을 만났다. 뽕밭머리에서 닭지붕으로 가는 길이었다. 익숙해져서 해찰할 것 없는 산길인데, 진달래 꽃길이 있는 것도 몰랐다니. 꽤 길게 이어져있다. 잎도 나오기 전 나뭇가지에 피운 연분홍에 산중이 들떠있다. 긴 겨울을 건너온 상기된 표정이다.

  그래서 문득 생각났다. 그 황홀했던 진달래 꽃 터널! 양쪽에서 우거진 가지로 인해, 꽃 더미에 파묻힌 것 같았지. 그 기억을 더듬어 찾아가보기로 했다. 중인리 쪽에서 올라간 모악산기슭이었는데...

  등산로가 많아서 어느 길로 가야 그곳을 만날 수 있을까,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능선 쪽으로 올라가면 진달래가 많단다. 산자락에 들어서니 벌써 꽃이 지고 연둣빛 잎이 나와 있다. 늦었구나. 진달래는 개화 후 일주일이면 절정을 이루고 꽃을 볼 수 있는 기간은 고작 열흘 남짓이다. 떨어진 진달래꽃을 밟으며 산길을 오른다.

  한참 올라가보니 아직 진달래꽃이 남아있다. 잠잠히 건네 오는 통꽃의 표정은, 평온한 시절을 보내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애잔한 손길로 꽃잎을 만져보니, 여리고 부드러운 감촉이 도리어 내 마음을 후듯하게 만진다. 세월은 앞으로만 나아가는 것이라서 늙어가는 것이 진리지만, 젊은 시절로 뒤돌아갈 수 있는 길이 딱 하나 있구나. 지난 추억을 상기할 때다. 기억속의 꽃 동굴은 찾을 수 없었지만, 잠시 얼굴윤곽이 선명해지며 수줍던 시절이 다가온다.

  진달래는 키 작은 나무인데도 아주 오래 산다. 정확한 나이를 알 수 없어 그저 줄기의 수와 굵기로 대강 짐작할 뿐이다. 하지만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꽃이 피지 않는 경우는 볼 수 없다. 삶에 쫓겨 바쁘게 세월을 흘려보낼 때도 봄마다 꽃을 피웠을 테지.

  문득 문득 생각날 거야. 지금쯤 그 능선에 진달래가 피었겠지.

김제시민의신문 webmaster@gjtimes.co.kr

<저작권자 © 김제시민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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