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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소선녀의 푸나무들의 노래

기사승인 2019.07.29  23: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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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 수수꽃다리

 

사진 : 나인권

엄마가 많이 아프셔요. 갑자기 다리에 힘이 없고 의식이 혼미하시다는 연락을 받고, 놀랐어요. 병석에 계신 어르신들은 예후를 짐작하기 어렵잖아요. 금세 기력을 잃으시네요. 다행히 조금씩 회복하고 계시지만 마음이 안 놓입니다. 그래서 자주 엄마를 보러가요.

  오늘도 합창 연습하러 가는 길에 잠시 들렸습니다. 앙상한 손을 붙잡으며 활짝 웃어 보이지만, 가슴엔 눈물이 고입니다. 엄마, 한평생 너무 고생만 하셨어요. 한숨 돌릴만하니 그만 쓰러지셔서, 휠체어 신세를 진지 벌써 십여 년째네요.

  그렇게도 총기가 좋으셨는데, 기운이 나빠지시면 정신도 오락가락 하셔요. 자식도 못 알아보고 갑자기 존대어를 쓰시거나, 딴소리를 하시면 가슴이 무너집니다. 요사이는 병원에 입원하시지 않고 집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는데, 다시 악화되실까 걱정이 됩니다.

  엄마가 살고계신 아파트 입구에는 라일락나무가 있어요. 개화 기간이 길어서 연보랏빛 꽃숭어리를, 한 달 내내 만나네요.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참씩 서성이며 바라봅니다. 오늘은 꽃송이를 한 꼭지 따서 주머니에 넣습니다. 교통사고로 후각을 잃어서 향은 못 맡지만, 그 달콤하고 솜사탕 같은 향은 기억하는걸요. 여고시절, 교정에 있던 라일락나무에서부터 좋아하는 마음이 시작되었어요. 꽃말이 젊은 날의 추억이에요.

  다발을 이루어 피는 모습이 수수이삭과 같다 해서 수수꽃다리라고 하였다지요. 너무 진하고 오래가는 꽃향기 때문에, 예전 양반들은 꽃을 말려서 문갑 속이나 화장대 속에 넣고 향을 즐기면서, 정향나무라고 불렀답니다. 본래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던 수수꽃다리를 미국인이 종자를 채취해서 가져다가 개량하여 '미스킴라알락'으로 특허등록을 했대요. 꽃도 예쁘고 향기가 좋아 전 세계에 퍼지게 되었고요.

  또한 술이나 효소를 빚으면, 감미로운 향이 으뜸인데다 담즙분비를 촉진하므로 소화와 식욕증진에 효과가 크고, 특히 육식을 할 때 곁들이면 좋답니다. 담석이 생겨 쓸개 빠진 사람이 되었으니 효소를 담아볼까, 마음이 동합니다.

  노래를 부르다가 주머니에 손을 넣었더니, 약간 시든 라일락꽃이 손에 잡혀요. 살짝 주먹 안에 쥐어 옆 사람 손바닥에 슬그머니 놓아줍니다. '어머나, 이 향기 좀 봐.' 그 꽃이 옆 사람, 뒷사람, 계속 건너가는 소리가 들려요. 방해가 될까봐, 지휘자님 눈치를 살핍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모여서 연습하는 저녁, 피곤에 절은 시간이지만, 달달한 향에 지친 몸이 풀립니다.

  혹시, 라일락 이파리를 맛본 경험이 있나요? 첫사랑의 맛이라고 해서 씹어봤던 잎의 맛을 오래도록 기억합니다. 어찌나 썼던지 바로 뱉었는데도 오랫동안 입안에 남아있었어요. 첫사랑의 맛을 알고 싶으면 한번 씹어보셔요. 저를 원망하진 마시고요.
  엄마는 밭 두덩에 수수를 심어서 쪄주시곤 했어요. 간식거리가 거의 없었던 시절, 한모가지 손에 들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지요. 한 알 한 알 아껴서 까먹으면, 학교 가는 길이 금방이었고, 쫀득하고 달짝지근한 맛이 좋았어요. 수수는 두뇌에 좋은 영향을 준다지요. 그런데 요즘은 수수를 잘 심지 않아서 구하기 쉽지 않아요. 새가 다 쪼아 먹어서 귀찮다고 하시네요.  수수를 사들고 가서 엄마에게 물어봤어요. '우리 어릴 때 수수 쪄줬던 거 생각나요?'

  '그럼, 그랬지.' 엄마 얼굴에 미소가 떠오릅니다.

김제시민의신문 webmaster@gjtimes.co.kr

<저작권자 © 김제시민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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