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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소선녀의 푸나무들의 노래

기사승인 2021.05.26  21:2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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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 미나리

92. 미나리

  '이것이 쓰잘디없는 바람이 아녀. 고추 심고 나면 이러는디, 얼매나 싸난지 모가 휘둘려서 심은 구멍이 뻥 뚫릴 정도로 된바람이랑게. 그려야 뿌리가 잘 내리고, 밑도 들고 허는 것여.'

  나무를 흔들어대며 요란을 떠는 날씨에,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근육통이 있어 오신 주민의 말이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대한 걱정도 많다. 특히 아스트라제네카백신은 아데노바이러스를 전달체로 이용하는 제조 방식이라서, 발열이나 근육통 같은 반응이 높게 나타난다. 아데노바이러스가 고열을 동반하는 독감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이가 많은 분들은 이미 아데노바이러스에 자주 노출되어와서, 항체를 갖고 있으므로, 부작용이 약하게 나타난다. 반면, 노출이 상대적으로 덜 돼 있는 젊은 층에선, 면역 반응이 강하게 나타난다.

  그렇다. 아픔이 이롭게 한다. 이만큼 살아와 지내놓고 보니, 고통과 고난이 약이 된 적이 많았다. 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받아들이고 겪어내면 면역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어떤 상황이라도 겁내지 말고 부딪혀볼 일이다.

  최근 우리 집에 어려움이 닥쳤다. 어머님께서 급격히 쇠약해지신 것이다. 무척 건강하셔서, 자식들이 복이 많다고 말해왔는데, 검사해보니 뇌혈관이 두 군데나 막혀 있었다. 드시던 약을 소홀히 하셨다는데, 진작 잘 챙겨 드릴 걸 자책이 되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말이 어둔해지셨고, 대소변 조절도 어려워지셨고, 걸음도 비척거리셔서, 반드시 누군가 옆에서 보살펴드려야만 하는 지경이 되었다.
 
  입원 치료가 끝나고 퇴원하셨는데, 자식들이 육 남매나 있지만 모두 제 앞가림하기에 바빠서, 어머님을 모실만한 형편이 못되었다. 그렇지만 요양병원 입원은 최대한 미루고, 한 달씩이라도 순번을 매겨 모시면서,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우리 집에서도 한 달 동안 계시게 되었는데, 솔직히 피하고 싶었다. 애꿎은 남편에게만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준다고 눈을 흘겼지만, 일단 최선을 다해보기로 맘먹었다. 먼저 화장실 가실 때 곁부축해 드리려고, 밤에는 거실에서 어머님이랑 나란히 잠을 잤다.

  어머니는 틈만 나면 누우셔서 주무셨다. TV도 즐기시지 않았지만, 소리도 듣고 움직임도 보시라고 틀어 놓았다. 어느 날 '윤스테이'에서 흰머리의 윤여정을 보시더니 '저이는 늙어서도 돈을 버네' 하시는 것이었다. 일부러 여쭈어도 모른다고만 하시고, 겨우 단어 정도만 말씀하시곤 했는데, 이럴 수가. 너무 기뻐서 그 프로그램을 자주 틀어드렸다.

  그러던 중에 지평선시네마에서 '미나리' 영화를 상영하길래, 어머니를 모시고 갔다. 청력이 좋지 않으신데다, 장시간 휠체어에 앉아 계신 것이 걱정되었지만, 저질렀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안 되어, 어머니는 아예 주무시는 듯했다. 지루하시구나. 그러다가 한참 후에 손자를 돌보려고 미국으로 온, 주인공 윤여정이 등장하는 장면이 나왔다. '어머니, 늙어서도 돈 잘 버는 여자예요.' 했더니, 눈을 번쩍 뜨셨다.

  영화에서 낯선 땅에서도 뿌리 내렸던 미나리를, 어머니도 잘 드셨다. 뭐 입맛 다실만 한 것이 없을까 하다가, 막 이파리가 나온 것을 사과와 함께 주스를 만들어 드렸다. 미나리는 각종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하고, 알칼리성 식품으로 해독과 혈액 정화에 효과를 낸다.

  처음엔 부담스러웠지만, 어머님과 함께 사는 일이 점점 허물없어졌다. 기저귀 차는 어머니를 날마다 따뜻한 물로 씻겨 드리면서, 나도 모르게 엄마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 달이 지나고 형님댁으로 가시게 되었을 때,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쥐여주셨다.

김제시민의신문 webmaster@gjtimes.co.kr

<저작권자 © 김제시민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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