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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소선녀의 푸나무들의 노래

기사승인 2021.11.19  14: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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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국

  하마터면, 하늘나라로 올라갈 뻔한 선녀 이야기를 하려고요. 

  이 세상에 내려온 지 환갑이 다된 선녀가 울릉도로 여행을 떠났답니다. 섬 전체를 한 바퀴 돌아주는 버스를 탔지요. 

  먼저 산 위에 있는 독도의용수비대기념관에 가 보려고 선창에서 내렸어요. 그런데 갈아타는 버스가 너무 뜸해서, 마냥 기다릴 수가 없네요. 그래서 경사가 심한 비탈길을 겁도 없이 달려들었어요. 걸어서 오르다가 중간쯤에 화장실이 있어서 한숨 돌리는데, 그 옆으로 전망대 올라가는 길이 있는 거예요. 그냥 지나치려는데, 옆에서 '꼭 올라가 보세요, 놓치기 아까운 곳이에요.' 일러 주셨어요. 대뜸 올라갔지요. 보물을 만났다고 할까요. 바다 위에 그림처럼 떠 있는 죽도를 볼 수 있었어요. 

  그런데요, 내려오는 길목에서 언뜻, 구멍 뚫린 높은 바위산이 멀리 보이더라고요. 신비한 모습에 끌려, 가까이 보러 가고 싶었어요. 다시 기념관을 향했는데 너무 멀고 계속 올라가는 가파른 길이라서 지쳐버렸어요. 내려올 때는 버스를 타려고 시간 맞춰 정류장으로 가는데, 그만 버스가 저만치 달아나 버리네요. 결국 걸어서 내려왔어요. 
 
  휴우, 오전에만 벌써 만오천 보 이상 걸었어요. 땀에 절었지요. 천부항에서 따개비국수를 먹고 쉬다가 걷기 시작했는데, 또 오르막이 나오네요. 다리가 팍팍하고 힘들었지만, 어떤 힘에 이끌렸던 것 같아요. 모퉁이를 돌자, 아까 봤던 구멍 뚫린 봉우리가 눈앞에 나타나는 거예요.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면서, 그 봉우리 언저리에서 누군가 애타게, 선녀를 바라보는 눈길이 느껴졌어요. 샅샅이 훑어보았지만, 연보랏빛 해국만 암벽에 군데군데 피어 있을 뿐인데요. 선녀는 손을 흔들어 주네요. 

  해발 430m의 큰 암벽으로 마그마의 통로인 화도가 굳어져 생긴 바위여요. 뾰족한 봉우리가 마치 송곳을 세워놓은 것 같아 송곳봉이라 부른답니다. 이곳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어요. 옥황상제가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는 착한 사람을 하늘로 낚아 올리려고, 8개의 구멍을 뚫어 놓았다는 거예요. 여기서는 4개의 구멍이 보이네요. 선녀를 걱정하는 옥황상제의 손길이었을까요. 맑은 기운이 감싸면서 몸이 가뿐해졌어요.

  다시 버스를 타고 가다가 태하에서 내렸어요. 더 이상 걸어다니는 것은 무리다 싶었지요. 더구나 향목전망대에 올라가는 모노레일이 중단되었지 뭐예요. 포기하려 했지요. 그런데 와,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급경사인 산길로 막 올라가고 싶은 거예요. 한 시간 가까이 비탈길을 오르고 올라 전망대에 섰어요. 울릉도는 올라간 만큼 보여요. 상상을 뛰어넘는 비경이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신선이 노니는 곳일까요. 그런데 또 거기서 다시 만난 송곳봉!. 해안선 끝자락에 우뚝 서 있었더라고요. 어딜 가나 선녀를 바라보고 있네요. 다음날 유람선을 타고 울릉도를 한 바퀴 돌 때도, 바다 쪽에서 바라보는 송곳봉은 의연한 모습이었지요. 선녀에게 안타까운 손짓을 보내는 듯했지만요.

  그리고 봉래폭포에 들렸어요. 날개옷을 벗어놓은 곳일까요. 하지만 선녀는 이제 많이 늙었어요. 세태에 찌든 얼굴은 선녀 같지 않고, 천식으로 매일 흡입기를 하며 살고 있는걸요. 디스크 협착으로 허리도 신통치 않고요. 다시 훨훨 날고 싶지 않을까요. 하늘나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까요. 폭포 역시 가파른 곳이라, 내려오는 길엔 발이 몹시 아팠어요. 너무나 많이 걸어 다녀 발톱이 앞부리에 밀렸지요. 디딜 때마다 울상을 짓자, 나무꾼이 팔짱을 거꾸로 덥석 끼더니, 뒤로 걸으라고 하네요. 한결 편해져서 사뿐히 내려왔답니다.

  흙도 없고 물도 부족한 바위에 붙어서도 꽃을 피우는 해국처럼, 어쩌면 착하게 사는 사람들도 옥황상제에게 낚이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겠어요. 
 

김제시민의신문 webmaster@gjtimes.co.kr

<저작권자 © 김제시민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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