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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소선녀의 푸나무들의 노래

기사승인 2021.12.27  14:5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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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8. 미친 꽃

  수목원엔 빨간불 노란불이 여기저기 수없이 켜있다. 멈추시오, 참으시오, 신호등인 양 천천히, 때론 제자리에서 쉬엄쉬엄 걷는다. 어라, 푸나무들이 모두 숨죽이고 있는데, 한 나무에만 분홍 꽃이 여러 송이 피어 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새들이 옆에 와서 뭐라 뭐라 얘기해 주는데 못 알아듣겠다. 그러자 더욱 시끄럽게 지저귄다. 봄에 잎이 나오기 전에 피워야 하는 꽃을, 왜 이제야 그랬는지 알려주는 것 같은데.

  수생식물원의 수련도 몇 개 남은 꽃을 꺾어서 물속에 담궜고, 장미원도 그 화려했던 동산이 거뭇거뭇하다. 이름표만 남은 백합은 아예 꽃대궁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줄지어 찍던 포토존도 한산하여 쓸쓸하구나.

  홍보관에서는 프랑을 걸고 '씨앗 아름다움에 반하다' 전시회를 하고 있다. 고성능 현미경으로 찍었다니 흑백사진이겠지 하고, 전시관 안으로 들어갔다. 갑작스레 알록달록한 색깔로 빙 둘러쌓이자,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다. 광활한 우주의 한 켜일까. 부드럽고 연한 빛깔로 반짝이는 별들이 눈앞에 있다. 

  와, 씨앗과 꽃가루가 이렇게도 아름답다니. 주사전자현미경(SEM)은 전자빔을 물체에 쏘아 튕겨 나오는 이차전자를 인식하여, 형체나 표면의 무늬를 30만 배 확대한 3차원의 이미지다. 본디 눈으로 보이지 않는 모습이 이렇게도 신비롭구나. 굴곡, 모양, 돌기, 털까지, 복잡한 표면 구조가 엉켜 환상적이다.

  씨앗의 확대 사진에, 발아되면 피우는 꽃의 색을 입혀, 과학과 예술 그리고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 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다양한 모양과 특징을 가진 우리 씨앗과 꽃가루를 엿보며, 경이로움에 가슴이 벅찼다. 무한한 잠재력을 품은 씨앗의 무지개 파장이 밀려들어 와 기운을 데운다. 들여다볼수록 본심에 새긴 그리움이 어려있구나. 겉모습은 무뚝뚝하고 딱딱하지만, 속에는 다정하고 섬세한 결을 간직하고 있구나.

  그중 패랭이 씨앗도 있다. 연분홍 주름이 겹겹이 모여 둥글어진 꽃잎 모양을 이루고, 심지엔 연두색이 실타래처럼 몽글몽글 꿈틀거린다. 가을이 기울자 꽃 진 잎이 누렇게 시들어가고, 긴 겨울엔 얼음이 백여 푸르딩딩했는데, 저렇게 어여쁜 종자를 품고 있다니, 그럼 됐지. 마음이 놓인다. 

  어쩌면 모든 생명은 저렇게, 고결하고 뜨거운 무늬를 품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기어이 꽃을 피워내는 것이다. 꽃의 어원은 곶인데, 바다 쪽으로 길게 튀어나온 땅을 말한다. 즉 돌출의 뜻이 녹아 있다. 식물의 몸통에서 외부로 솟구친 부위가 나중에 꽃이 되는 것이다. 밖에서 안으로 비집고 들어와 생기는 게 아니라, 안에서 힘껏 폭발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꽃을 삶의 절정에 비유하며, 꽃을 피우려고 몸부림친다. 그런데 바깥에서 찾으면, 진정한 내 것이 아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 책에서 이야기한다. 자기를 안다는 것은 마음 밭의 카리스마를 발견하는 것인데, 그것은 계산되지 않은 관계에서만 발현되고 커진다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믿어주는 관계가 필요한 것이다. 관심이 영양분이다. 얼어붙은 겉모습으로 내면을 짐작하지 말고, 고운 결 품고 있으니, 끄덕여 주자. 사물처럼 대하고 무시하면 면역체계가 무너진다.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하고 짓밟히고 꺾이는 꽃들이 얼마나 많은가.

  지 때를 모르고 피는 꽃을 광화, 미친꽃이라고 한다. 하지만 속에 간직한 열을 피우고 싶어 안달인 것이다. 억누르는 것들이 하도 많아, 늘 허기진 것이다. 조금만 기온이 올라가도 물불 안 가리는 것이다.

김제시민의신문 webmaster@gjtimes.co.kr

<저작권자 © 김제시민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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