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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소선녀의 푸나무들의 노래

기사승인 2022.03.04  17: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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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 납매

사진: 나인권

  설 쇠고 아침나절 수목원에 갔습니다. 겨울을 견디고 있는 나무들이 보고 싶었지요. 작년 가을에서야 꽃 피웠던 진달래가, 꽃눈을 맺었었는지도 궁금했어요. 그 녀석이 또 봄을 놓칠까 봐서요.

  눈발이 들이치는 수목원은 어느 것 하나 색을 걸치지 않은 빈 몸뚱이지만, 씩씩한 척하네요. 그래요, 모두 힘겹지만 버티고 있었어요. 하지만 고독한 몸부림에서 서늘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더군요. 스산한 품을 웅크리고 거무튀튀한 장미 뜨락도 보고, 시든 연잎이 얼음 속에 갇힌 것도 들여다봤지요. 같은 부류의 동질감이랄까, 속엣말을 주고받습니다. 춥지? 나도 그래.

  혼자 실컷 느긋거리다가, 다음 일정이 생각났어요. 다급해져서 여유는 그곳에 팽개치고 빠져나오는데, 주차장에서 반가운 성을 만났지 뭐예요. 한 바퀴 돌고 나왔는데 서로 못 봤네, 하면서도 설렁설렁 헤어졌지요. 요즘 정신없는 조급함과 자연에서 고요함 두 마음을 품다 보니, 충돌사고로 자주 부대낍니다.
 
  약속된 행사에 쫓기듯 가고 있는데 성이 사진 두 장을 보내왔습니다. 수목원에서 찍은 것이네요. 하나는 눈을 이고 있는 납매 꽃송이였어요. 어마, 환하게 꽃잎이 열리는 듯해요. 우중충한 가슴이 환해집니다.
  '납매 봤어?'
  '피었어요?'
  '그럼, 일주일 전에 피었어. 그거 보러 갔지'

  이런, 어둡기 전에 얼른 가서 봐야지, 일을 마치고 서둘러 수목원에 다시 왔어요. 화장실 뒷편으로 납매 아홉 그루가 양쪽에 서 있습니다. 그냥 지나쳤던 길이지요. 누렇게 바랜 시든 잎을 떨구지 못하고, 가득 매달고 있습니다. 꽃이 지고 나면 새잎이 나올 텐데 곧 비켜주겠지요. 그 묵은 한 잎에, 성이 보내준 다른 사진 속의 매미 거푸집이 붙어 있네요. 머리와 등 뒤쪽이 뻥 뚫린 채, 남겨진 마음이 서럽습니다. 탈피하고 날아간 녀석은 목놓아 살다 갔겠지요. 사진 찍어 성에게 답장을 보냅니다.

  납매는 음력 섣달을 뜻하는 납(臘)에 매화를 뜻하는 매(梅)를 합친 말입니다. 추위를 뚫고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이니 '한객(寒客)'이라고도 불리지요. 잎이 나오기 전 가지에 손톱만 한 꽃이 송골송골 피어납니다. 겨울 정원에서 노란 꽃을 잇따라 피워내는 납매는, 겨울꽃의 생존 전략을 가졌어요. 그것은 꽃이 핀 것을 알아채게 할 만큼 강한 달콤한 향기랍니다. 추위가 강할수록 짙은 향기를 내뿜습니다. 모양이나 색깔이 아니라 향기로 번식을 이루기 위해 안간힘 쓰는 것이지요. 소박한 겉모습 안에 갖춘, 눈에 띄지 않는 강인함이 신비롭습니다.

  그런데 나는 드러내기 전의 마음을 맡아주기는커녕, 와있는 봄을 눈여겨보지 못했네요. 돼지는 머리를 위로 15도 이상 들지 못한다지요. 그래서 땅만 바라보고 살지요. 다만 자빠져서 뒤집혀봐야 비로소 어, 하늘이 있구나.

김제시민의신문 webmaster@gjtimes.co.kr

<저작권자 © 김제시민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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