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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소선녀의 푸나무들의 노래

기사승인 2020.07.06  12: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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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 앵두

 

사진: 나인권

'따먹지 마세요. 약 줬어요.'
  빨갛게 익은 앵두가 반가워, 얼른 하나 따서 입에 넣었는데, 뒤에서 소리가 난다. 그래도 탱글탱글한 것 몇 개 더 따서 챙긴다. 가져가서 예쁜 그릇에 담아두고 봐야지. 약간은 시고 조금은 달콤한, 그닥 별맛이 아닌 싱거운 열매지만, 그 안에 어린 내가 들어있다.

  앵두나무를 다시 길러보고 싶었다. 그래서 몇 해 전에, 묘목을 사다가 심은 적도 있는데, 잔디 깎는 아저씨가 모르고, 싹둑 베어버렸다. 앵두나무 잎은 거치가 있고 잎살이 우둘투둘해 쉽게 구별되는데, 더 이상 인연이 안 되려고 그랬나. 그래도 주말마다 오는 이곳에 한 그루 있어, 자주 그 곁에서 얼쩡거리곤 한다. 열린 것을 본 지 얼마 안 되었는데, 그새 빨갛게 익었구나.

  어린 시절, 우리 집 앞마당에는 앵두나무가 있었다. 봄이면 가지마다 작고 하얀 꽃을 피우고, 여름이면 빨갛고 반들반들한 열매를 주었지. 하지만 참 이상하지. 간식거리가 없던 시절에, 한주먹 따서 볼이 미어지게 몰아넣고, 씨를 뱉어내며 먹던 재미도 있었는데, 그 왜소한 몸치의 추레했던 모습이, 먼저 생각나는 걸까. 해묵은 가지는 껍질이 벗겨져, 버짐 난 아이처럼 지저분하고, 털북숭이 쐐기벌레가 붙어있어 무서웠지. 둥치는 굵어지지 않고 비실거렸어. 그래도 어김없이 디리디리 앵두를 맺어줬는데.

  왜일까. 그래, 바로 그 참새 녀석 때문이야. 시골집 넓은 앞마당에는 늘 곡식을 널고 털어서 그랬는지, 새들이 종종 놀러 왔어. 콩닥거리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웠다고, 함께 놀고 싶어 안달이 났는데, 가까이 다가가기만 하면 우루루 날아가 버리는 거야. 저걸 어째, 번번이 약이 올랐지. 그래서 삼태기에 부지깽이를 괴고, 쌀을 뿌려놓고, 기다렸지 뭐야. 덜컥 걸려들었지.

  앵두나무는 가지가 땅에서 많이 나와. 뿌리 옆으로 나온 그 곁가지들을 짱짱하게 엮어서, 잡은 녀석들을 가둬뒀지. 훨훨 날아가 버리지 못하게 말이야. 종지에 물을 담아주고, 파리도 잡아다 넣어 줬지. 밥도 한 숟갈 남겨 나눠 먹었고. 자다가도 나가서 귀를 대보곤 했어. 도망가버리면 어쩌나 마음 졸이면서. 그런데 날이 갈수록 그 녀석들이 즐거워 보이지 않는 거야. 기운을 잃고 시들시들하더니, 결국 죽고 말았어.

  눈먼 욕심을 내려다, 잃어버렸으면서, 그랬으면서, 왜 그리 끈질기게 내 것으로 하고 싶었을까. 쓰라린 기억은 참 오래갔어. 나무 밑동을 바라볼 때마다 그만 가슴이 먹먹해지곤 했지. 산에서 캐온 할미꽃도, 몇 번이나 앵두나무 곁에 심었지만, 뿌리를 내리지 못했잖아. 어쩌자고 기어이 울안에 갖고 싶었을꼬.

  그런데 있잖아.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하나 있어. 꺼병이를 잡아다가 앵두 나무둥치에 발을 묶어둔 것을, 오빠 몰래 실을 끊어줘 도망가게 했거든.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으니까. 그 무엇도 진짜 내 것이 아니라는 허망을. 그런데도 어른이 되면서 너무 많은 것을 갖게 됐어.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더욱 타자를 억압하고 자기화했어. 왜 이리 무거운가, 붙잡힌 영혼이여!. 그러다가 얼마나 많은 것을, 아주 잃어버렸던가.

  모든 숨 탄 것들은 그저 나그네일 뿐이지. 삶은 흘러가는 거니까. 이 지상에는 영원한 거처란 없어. 하물며 자식도 내 것이 아닌 것을. 그저 마주친 그 순간에 최선을 바치는 게야. 마음을 온통 빼앗겼다가도, 얽매이지 않는 거지.

  그런데 왜, 앵두나무에 발이 묶인 것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걸까.

 

김제시민의신문 webmaster@gjtimes.co.kr

<저작권자 © 김제시민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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