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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소선녀의 푸나무들의 노래

기사승인 2020.08.09  01:4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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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2. 연꽃

  삶의 뜰에 꽃이 그득합니다. 너른 초록 잎사귀가 너풀대고, 그 사이사이에 연꽃이 살포시 피었습니다. 둥근 꽃은 신비로운 보물을 감싸 안은 듯 황홀하기 그지없네요. 이렇게 아름다운 생이라니요. 속이 가지런해지고 설렘이 가득 찹니다. 온 우주가 합세한 하모니가 넘실댑니다. 

  저수지의 한 언저리입니다. 어느 해엔 이곳에 가시연꽃이 깃든 적도 있었더랬지요. 하지만 가뭇없이 사라져버리고 말더군요. 갈대도 좀처럼 퍼지지 못하고, 한두 포기만 어영부영했었어요. 그런데 보세요, 다른 굽이에서 흘러들어온 홍련이, 지금 꽉 차 있습니다. 십여 년 걸린 게지요. 진분홍 꽃이 몹시 화사합니다. 

  연은 생명을 잉태하는 이름과 닮아있습니다. 우리말에 여성을 낮잡아 이르는 년이란 말이 있지요. 기실은 태양을 낳는 존재, 생명을 낳는 존재, 그런 숭고한 의미를 지닌, 뿌리 깊은 외마디의 우리말입니다. 그리고 남자를 얕잡아 이르는 놈은 놀이를 즐기는 노는 존재, 이 두 가지 우리말은 동원어일 것입니다. 생명을 잉태하는 존재, 그것은 고대이건 현대이건 그 영속성을 보장하는 절대 우위의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선지 빼어난 기품이 서려 있군요.

  하지만, 저 고귀한 꽃이 뻘 속에 발을 담근 것처럼, 진흙탕에 뒹구는 게, 인생이라지요. 당신의 삶도 그러한지요. 자궁에서 나온 이후, 우리가 가는 길은 벼룻길입니다. 오죽하면 생애(生涯)라 할까요. 오늘도 코로나19로 갇혀 지내며, 힘겹습니다. 어쩌면 평생 우리를 따라다닐지도 모르지요. 사귐에 장벽이 생겨, 두려움이라는 문신을 이미 새겨졌습니다. 보이지 않게 묻혀있다가 시도 때도 없이 우리를 사로잡을 테니까요.

  마스크로 가리고 만나니, 안색을 살필 겨를이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외롭고 고단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픔은 그 무게나 센 정도를 가늠하기 어렵지요. 내색하지 않는 고통은 알 턱이 없습니다. 그래서 늘 무탈하게 지내는 줄 여깁니다. 하지만 울음을 모르고 사는 게 아니라, 울음을 억지로 삼키며 지내고 있는걸요. 

  그러다 숨어있던 눈물의 샘이 터진 것처럼,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었던 시간, 혼자서 감내해야 했던 설움이 바닥을 치고 터져 나옵니다. 그것이 어여쁜 연꽃을 피어나는 바로 그 순간입니다. 오늘이 꼴을 갖추면, 밤이 계속될 순 없으니까요. 어둠이 깊으면 아침이 가깝습니다. 삶은 기쁨과 슬픔의 변곡선입니다. 조금만 조금만 버텨봐요. 꽃이 개화와 낙화를 거듭하듯이 삶도 마찬가지지요. 가장 깊은 곳에 연결되어있는 생명력은, 아침마다 새 꽃봉오리를 올립니다. 

  외진 곳에 핀 연을 사모하여, 기어이 만나러 왔지만, 그저 고즈넉이 바라볼 따름입니다. 한 송이 꺾어 들지 않고, 가까이 들이대지도 않습니다. 고속도로가 지나가느라, 곧 이 자리가 메꿔질 거라는군요. 어쩌지요, 더부살이를 하건만, 우리는 자연을 너무 함부로 여깁니다. 모두 시절 인연이지 만요. 씁쓸히 서정주 시인의 '연꽃' 한 구절 읊조립니다. 

  저리도 애잔하게 아리따운 자태를 두고, 스쳐 가는 마음이라니, 몇 걸음 떼고 돌아보니, 벌써 둑에 가려 보이지 않네요. 만나러 가는 달뜬 바람이 아니라, 호들갑스러움 없이 흘러가는 바람처럼 만나고 가는 마음입니다. 저 연은 삶의 어떤 것도 계속 고집하지 않고, 저항하지 않고, 매운듯한 향기를 내놓을 따름이겠지요. 그러하겠지요. 

  당신께 연 향을 전합니다.

사진 : 나인권

김제시민의신문 webmaster@gjtimes.co.kr

<저작권자 © 김제시민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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